경제학의 흐름에 해당하는 글 2

근현대 경제학의 흐름 요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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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아울러 함께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20여년을 아우르다보니 내용이 많아져 두편으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7,80년대 흐름의 특성상 이어져서 진행되는 부분이 많아 부득이 함께 정리해봤습니다)



첫 시작은 경제학의 흐름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냥 경제의 흐름으로 변모해가고 있네요.. 아무래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해 논지를 바로 세우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ㅠㅠ



1970년대 ~ 1980년대

 

오일쇼크

 

1970년대에 들어서며 ‘Pax Americana'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베트남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연방 정부의 지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60년대 말,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세금을 올렸으나 이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더욱이 1973년 제4차 중동전쟁[각주:1]에 여파로 산유국들이 담합하여 가격인상과 수출량 억제를 실시한, 1차 오일쇼크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경제 강국들은 휘청거렸다


그림 1. 1946년 이후 배럴 당 원유가격 추이

파란색 실선은 2013년 USD로 조정한 가격, 아랍산유국의 담합과 Embargo(통상금지책)으로 인한 원유가 상승

출처 : http://www.ibtimes.com/four-decades-after-arab-oil-embargo-us-outperforms-saudi-arabia-how-1973-crisis-changed-us-energy


그림 2. 1973년 오일 쇼크 때 New York City, Brooklyn 의 모습

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해 대부분의 차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 였으며, 경제적 타격 또한 컸다.

출처 : http://artnectar.com/2010/02/1970s-new-york-city-in-pictures/


스태그플래이션[각주:2]으로 인해 실업률은 증가하기 시작했고, 사회보장제도 탓에 실직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악화되었다. 1977년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당선되며 경제의 악순환을 타파하고자 정부 지출을 늘리는 등의 정책을 펼쳤으나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또한 197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각주:3]가 통화 공급을 단속하기 시작했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며 경제는 기나긴 침체 속으로 빠져들었다.[각주:4]


  오일쇼크는 미국 뿐 아니라 서유럽국가에도 큰 타격을 입혔으며 영국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플랜에 의한 경제 부흥정책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려 노력하였으나, 유독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성과가 미비했다. 또한 큰 정부의 역할을 중시했던 경제 정책들은 근로자들의 잦은 파업과 과도한 복지를 가져왔으며 그로 인한 재정 악화, 근로의욕 저하 등 소위 영국병이라고 불리는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에 신음했다.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경제 전 부분을 뜯어 고치는 개혁이 필요했고, 1979년 때마침 마가렛 대처가 영국에 등장했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

 

사실 마가렛 대처의 등장 전 영국은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가 팽배했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에게는 빛바랜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었으며 각종 부정부패와 식민지 산업 실패, 무역 적자 등에 시달렸고 더욱이 요람에서 무덤까지책임지는 큰 정부의 복지정책은 사람들에게 필요이상으로 복지를 제공해줌으로써 영국병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당시 경제 수치를 살펴보면 실업률 15%, 인플레이션 24.2%[각주:5] 이었으며 이는 영국 경제와 사회의 어려웠던 상황을 잘 말해준다.

그림 3. 영국의 인플레이션과  GDP성장률

마가렛 대처 집권 시기와 맞물려 인플레이션이 급속도로 안정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출처 : 그림 안에 표기

 
  마가렛 대처는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했다이 방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며 신자유주의 이론에 입각한 정책을 내세웠다. 이 대처리즘의 경제·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만들어 졌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시장원리 준수, 자유경쟁 촉진, 정부규제 철폐, 기업구조 조정, 공공재 폐지, 금융 개혁[각주:6] 등을 주장하는 새로운 경제사상을 말한다. 그 특징으로는 자유경쟁의 촉진, 극대의 효율성 추구, 이윤의 극대화, 시장경제원리의 준수, 규제 철폐, 기업의 경쟁적 우위 확보, 공기업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촉진, 실질임금의 하향 경직성 제거, 공공지출 축소, 중앙집권 지양, 정부기구 및 기업구조 조정, 사회복지부문에 대한 공공예산 삭감, 공공재의 개념 철폐 등이 있다. 이는 과거의 자유주의 즉, 고전적 자유주의[각주:7]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1979년 철의 여인[각주:8]이라고 불렸던 마가렛 대처는 대처리즘을 통해 영국을 개혁했으며 이를 통해 다시금 강국으로 변모하는 계기를 다졌다.

  

  대처리즘을 통한 개혁을 했던 그 시대에 미국은 깊은 경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결국 미국의 여론은 지미 카터를 낙선시키고 헐리우드 출신 켈리포니아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의 손을 들었다. 레이건은 지금까지의 경제흐름은 잘못되었으며 시장중심의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정부 지출의 축소 세율 감소 정부 규제 축소 화폐 공급량 조절의 정책인 레이거노믹스 정책을 통해 미국 경제 변혁을 단행했다. 물론 세율을 감소시킴으로써 연방정부의 적자는 임기 초기 대비 3배나 증가한 2210억 달러(1986)로 최고점을 갱신한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통해 금리를 조정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시키는 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나간다.[각주:9] 


그림 4. 레이거노믹스 표 정리

레이거노믹스로 인한 후대의 평가는 엇갈려 있다.

출처 : http://mydaum00.tistory.com/entry/40%EB%8C%80-%EB%A1%9C%EB%84%90%EB%93%9C-%EB%A0%88%EC%9D%B4%EA%B1%B4-%EB%8C%80%ED%86%B5%EB%A0%B9%EA%B0%95%EA%B2%BD%EB%B3%B4%EC%88%98%EC%9E%84%EC%97%90%EB%8F%84-%EB%AF%B8%EA%B5%AD%EC%9D%B8%EC%97%90%EA%B2%8C-%EB%86%92%EC%9D%80-%EC%9D%B8%EA%B8%B0%EB%A0%88%EC%9D%B4%EA%B1%B0%EB%85%B8%EB%AF%B9%EC%8A%A4Reaganomics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은 경제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Pax Americana‘의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빠르게 성장한 아시아 시장은 미국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미국을 꾸준하게 따라온 일본이 미국을 앞서면서 미국 대신의 경제성장 대안 모델로 떠올랐다.

  1. 제1차 중동전쟁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 건국이후 아랍연맹은 전쟁을 실시했고, 민간인들의 들고 일어서 어렵사리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지켜냈으며, 그 사이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완벽한 독립을 일궈냈다. 이후 4차 중동전쟁까지 네 번의 전쟁이 발발한다. [본문으로]
  2. Stagnation(경기 후퇴)와 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 [본문으로]
  3. Federal Reserve System : Board of Governors 현재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연방제도이사회 [본문으로]
  4. 사실상 통화 공급을 줄이는 것은 큰 정부의 역할과는 상반되는 정책이다. 또한 통화 공급이 줄어듦과 동시에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소비 축소 등이 일어나기마련이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통화 공급을 통해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정책이며, 미국은 통화 공급 억제책 이후 침체에 빠지나 그와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경제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듬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본문으로]
  5. 연이은 경제정책 실패와 오일쇼크로 인해 타격입은 영국 경제 뒤에는 강력한 노조가 버티고 있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높은 임금을 이끌어 냈으며 더 어려워진 경제사정은 결과적으로 1976년 IMF 체제를 불러왔다. [본문으로]
  6. 마가렛 대처는 1986년, 부패로 얼룩져 약화될 때로 된 금융을 세계시장에 개방한다. 그러나 무작정 개방한 것이 아닌 정부의 지원을 기초로 했으며, 영국의 금융회사들은 이를 통해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으로 발돋움 한다. [본문으로]
  7. 고전적 자유주의는 국가의 최소화를 통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이념이다. 즉, 작고 강한 정부의 개념이다. [본문으로]
  8. 사실 철의 여인은 소련정부가 마가렛 대처의 철혈정책을 비판하고 인성을 깎아 내리기 위해 사용한 별명이었으나 그녀가 이 별명을 마음에 들어 하여 영국 언론에서도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9. 이 시기부터 FRB는 경제의 교통경찰의 역할이 되어 이끌어 나갔으며 경제부분에 있어서 대통령보다 힘이 강력한 기관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앨런 그린스펀이 있다. 앨런 그린스펀은 약 20년간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의장재임시절 닷컴 붕괴 등의 경제위기를 잘 대처했다고 칭송받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너무 지지한 탓에 부동산 버블로 이어지게 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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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제학의 흐름 요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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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전공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배워본 적도 없고 재미삼아 책을 읽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경제학의 흐름을 정리하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근현대 경제학의 흐름을 요약해보고자 합니다. 만약, 내 정리가 틀린 것이 있다면 바로 지적해주길 바랍니다. 또한 퍼간다면 꼭 출처를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





1910년대 ~ 1930년대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1차 세계대전 (1914728~ 19181111).

 


그림 1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출처 : mnd-policy.tistory.com


  전쟁의 중심지였던 유럽(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전쟁이 끝난 후 파괴된 사회기반시설과 경제시설 등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온 힘을 쏟았으나 그 효과는 더뎠다. 베르사유조약[각주:1]에 의해 바이마르공화국 등 패전 국가들은 연합군에게 전후복구 금액을 지불했어야 했으나, 패전국가의 재정도 파탄직전이었다


당시 세계 경제의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의 몰락과 전쟁 군수물자 등을 공급하면서 벌어들인 소득 탓이었다. 결국 세계 경제와 힘의 균형은 미국이 하나의 기둥을 책임지고 있었다. 특히 1920년대, 전쟁직후 미국의 경제는 대 호황이었으며 미국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신의 가호를 받아 빈곤이 이 나라에서 사라질 날을 곧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연설을 할 정도였다. 사실상 온 미국은 모두가 부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국민 대부분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주식을 구매했다. 그러나 문제는 19291024일과 1029일 일어난 주식대폭락사건의 발발 이후였다. 일명 검은 목요일(혹은 검은 화요일)이라고 하며 뉴욕증권시장의 다우지수가 9월 한 때 최고 381.17까지 올랐으나 1024299.4720%이상 하락하였다.[각주:2] 이어 1029일에는 230.07을 기록했다. 1930년대 들어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경제 호황의 마지노선을 의미했던 300대가 무너진 충격이 큰 탓이었는지 미국 증시는 다시 1930년 말부터 32년까지 폭락했으며 193278일 다우지수는 41.22였다. 그리고 이것이 전 세계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그림 2. 대공황 당시 미국 실업률


1933, “아메리카 사람들을 위한 뉴딜을 외치며 미국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개혁을 단행했으며 크게 금융 및 은행 개혁 금본위제 폐지[각주:3] 농업개발 지원 금주법 폐지 등이 있다. 이를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위기와 대공황을 극복하는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가뜩이나 전후복구로 힘들었던 유럽 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국가 모두 20% 이상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결국 유럽의 경제가 바닥으로 치닫자 일부 국가(바이마르공화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파시즘이 득세했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이후에도 세계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으며 사람이 살기에 더욱 힘들어 졌다.


  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수장들이 맺은 평화협정이다. 사족이긴 하지만 프랑스가 수치심을 씻고자 베르사유 궁전에서 협정이 맺어졌다. [본문으로]
  2. 10월 24일 당일, 시카고 및 버팔로 주 거래소가 오후 12시 30분경 주식 폭락을 막기 위해 문을 일찍 닫았지만 이미 11명이 자살한 이후였다. 그야말로 미국 국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날이었다. [본문으로]
  3. 은행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금화로 발행하는 것을 금화본위제라고 하며, 실질적으로 들고 다니기 무겁고 불편한 탓에 금화와 같은 가치를 갖고 있는 화폐를 발행 후 언제든 금화로 바꿔주는 것을 금태환제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나 전쟁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화폐를 마구잡이로 발행했으며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발하게 되었다. 독일(바이마르) 같은 경우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도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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