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에 해당하는 글 1

근현대 경제학의 흐름 요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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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전공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배워본 적도 없고 재미삼아 책을 읽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경제학의 흐름을 정리하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근현대 경제학의 흐름을 요약해보고자 합니다. 만약, 내 정리가 틀린 것이 있다면 바로 지적해주길 바랍니다. 또한 퍼간다면 꼭 출처를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





1910년대 ~ 1930년대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1차 세계대전 (1914728~ 19181111).

 


그림 1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출처 : mnd-policy.tistory.com


  전쟁의 중심지였던 유럽(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전쟁이 끝난 후 파괴된 사회기반시설과 경제시설 등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온 힘을 쏟았으나 그 효과는 더뎠다. 베르사유조약[각주:1]에 의해 바이마르공화국 등 패전 국가들은 연합군에게 전후복구 금액을 지불했어야 했으나, 패전국가의 재정도 파탄직전이었다


당시 세계 경제의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의 몰락과 전쟁 군수물자 등을 공급하면서 벌어들인 소득 탓이었다. 결국 세계 경제와 힘의 균형은 미국이 하나의 기둥을 책임지고 있었다. 특히 1920년대, 전쟁직후 미국의 경제는 대 호황이었으며 미국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신의 가호를 받아 빈곤이 이 나라에서 사라질 날을 곧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연설을 할 정도였다. 사실상 온 미국은 모두가 부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국민 대부분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주식을 구매했다. 그러나 문제는 19291024일과 1029일 일어난 주식대폭락사건의 발발 이후였다. 일명 검은 목요일(혹은 검은 화요일)이라고 하며 뉴욕증권시장의 다우지수가 9월 한 때 최고 381.17까지 올랐으나 1024299.4720%이상 하락하였다.[각주:2] 이어 1029일에는 230.07을 기록했다. 1930년대 들어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경제 호황의 마지노선을 의미했던 300대가 무너진 충격이 큰 탓이었는지 미국 증시는 다시 1930년 말부터 32년까지 폭락했으며 193278일 다우지수는 41.22였다. 그리고 이것이 전 세계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그림 2. 대공황 당시 미국 실업률


1933, “아메리카 사람들을 위한 뉴딜을 외치며 미국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개혁을 단행했으며 크게 금융 및 은행 개혁 금본위제 폐지[각주:3] 농업개발 지원 금주법 폐지 등이 있다. 이를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위기와 대공황을 극복하는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가뜩이나 전후복구로 힘들었던 유럽 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국가 모두 20% 이상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결국 유럽의 경제가 바닥으로 치닫자 일부 국가(바이마르공화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파시즘이 득세했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이후에도 세계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으며 사람이 살기에 더욱 힘들어 졌다.


  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수장들이 맺은 평화협정이다. 사족이긴 하지만 프랑스가 수치심을 씻고자 베르사유 궁전에서 협정이 맺어졌다. [본문으로]
  2. 10월 24일 당일, 시카고 및 버팔로 주 거래소가 오후 12시 30분경 주식 폭락을 막기 위해 문을 일찍 닫았지만 이미 11명이 자살한 이후였다. 그야말로 미국 국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날이었다. [본문으로]
  3. 은행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금화로 발행하는 것을 금화본위제라고 하며, 실질적으로 들고 다니기 무겁고 불편한 탓에 금화와 같은 가치를 갖고 있는 화폐를 발행 후 언제든 금화로 바꿔주는 것을 금태환제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나 전쟁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화폐를 마구잡이로 발행했으며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발하게 되었다. 독일(바이마르) 같은 경우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도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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